2011년 05월 28일
귀머거리 제라늄과 들리지 않는 소리.
삼각지와 신용산 역 사이에 있는 꽃집에서 제라늄을 산적이 있다. 길가다가 충동적으로 샀는데 정말 아무생각없이 없었다. (그때당시.) 하지만 나는 2년넘게 제라늄을 생각해 왔었다. 첫사랑을 그리워 하듯이.(처..처...첫사랑? 내게 첫사랑을 물어보면 선뜻 누구를 말해야 되나 심각한 고민해 빠진다. 세븐일레븐에서 4월말까지 제로콜라를 1+1에 팔당시 2개를 집어야 하나 동생것까지 4개를 집어야하나 딱 5초 고민할때와 같이.) 옛날에 살던 곳에 하얀색 제라늄이 있었는데 베란다에 방치해 두고 로보트처럼 물만 주곤했었다. 그런데 1년동안 죽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도 그대로였다. 나는 감탄했으며 그 집을 떠나면서 그 애를 그냥 그곳에 두고 작별을 하면서 언젠간 다른 제라늄을 만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이사간 집엔 '난'을 두었었다. 난(내가 아니라) 역시 잘 죽지 않았다. 무심해도 굳건히 버텨주었다. 그래도 그 겨울에 한참 제라늄을 찾으러 다닌적이 있었다. 매번 지나가는 꽃집에 들러 최소 다섯번은 물어보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구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집에 살고 있다. (글만 봐선 무슨 노매드 같은데.) 결국 아무생각없이 산게 아니라 내 머릿속 1%정도는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타이밍이 벌어졌겠지. 집에 데리고 와서 애지중지 돌봐주었다. 원래 동식물관리에 매우 서투른 나지만 아침에 일어나 물주고 창가에 두고 저녁엔 다시 화장실에 데려가 물주고 하는 것을 매번 반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싱싱! 해져가는게 아니라 죽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웃기지만... 난 정말 울고 싶었다. 식물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쪽팔리지만 사랑해!죽지마! 라고 소리내서 말해보았다. -_- 귀가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는지 나날이 죽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미워졌다. 화장실 구석에 놓았다. 물은 이틀에 한번, 요즘은 삼일에 한번 주었다. 꽃은 흔적도 없어졌으며 이파리까지 말라가고 있다. 다섯줄기정도 간당간당 살아있다.
그래서, 가위로 마른 줄기들을 모조리 잘라 주었다. 덤덤하게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흙을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아주 작은 거미 비슷한 것들이 있었다. 아얘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하니 수경재배가능하다고 잘라서 물에 담그면 괜찮다고 하며 살아있는거 그렇게 , 여기서 내가 말을 잘랐다. 어차피 엄마도 바쁘신것 같았고 난 다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자른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콜라병을 자르고 물을 담아 살아있는 몇몇 줄기를 담가놓았다. 이제 마음이 편안하다. 줄기를 내렸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스티로폼에 꽂아줄테고 더 잘 버틸 수 있겠지. 왜, 버티라고, 아프지말라고, 죽지말라고 얘기해야 하는건지?
선인장을 좋아해야 할것같다.

sick geranium
# by | 2011/05/28 12:50 | 미궁 201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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